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 2세 (문단 편집) == 자식들 == 자식들이 하나 같이 [[웬수]]들이었다. 다만 이는 아들들이고, 딸들과는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헨리 2세 자신이 자초한 면도 컸다. 국정을 열심히 하고 워낙 바쁘게 돌아다닌데다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잉글랜드]]에 자주 오지를 않았기 때문에[* 헨리 2세의 재위기간은 34년인데 [[잉글랜드]]에서 있었던 시간은 14년이었다. 한마디로 재위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것이다.], 자식들 대부분은 성장기에 아버지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들었다. 보다못한 [[캔터베리 대주교]]가 >"아무리 비정한 부모라도 폐하보다는 나을 겁니다." 라면서 자식들 좀 자주 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이러니 장성한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별 애정이 없고, 자주 보던 어머니와 친했던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가정에 무심하고 바람기로 인해 아내와 사이가 나쁜데도 화해하지 않고, 반란 이후 아내를 감옥에 가두고는 풀어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아들들이 아버지를 좋게 볼 수 없었다. 특히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아들들에게 직책만 주었지 권한을 주지 않았기에 이는 아들들을 힘들게 만들었고, 아들들의 영지 분배도 독단적으로 하여 이는 아들들과의 불화를 커지게 만들었다. 청년왕 헨리에게는 [[노르망디]], 리처드에게는 [[아키텐]], 제프리에게는 [[브르타뉴]], 막내 존에게는 [[아일랜드]]의 통치권을 약간씩 주고, 처리하기 힘든 안건을 도와주는 식으로 후계자 수업을 시켰다면 아들들의 불만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왕 [[루이 7세]]나 [[필리프 2세]]가 정치적인 이유로 부자들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막내아들인 [[존 왕]]과 딸들을 빼고는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아들 [[리처드 1세]]의 약혼녀를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의혹도 있다. 이 설을 따르면 본인도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막내 [[존 왕]]은 아버지를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헨리 1세부터 부지런히 모은 [[프랑스]] 쪽의 영토를 날린 일등 공신이었다. 리처드 1세의 공격을 받은 헨리 2세의 주변에 남은 아들은 오로지 서자 제프리 뿐이었다고 한다. 헨리 2세는 제프리에게 >"그놈들은 [[후레자식]]들이고 너만이 내 진정한 자식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차남이었던 [[청년왕 헨리]]를 많이 사랑하여 그가 반란하다 급사했을 때 >"나를 많이 괴롭게 만들었지만, 나를 더 괴롭혀도 좋으니 그가 살아있기만 하면 좋겠다." 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하지만 4남 제프리 2세의 급사 소식을 들었을 때 웨일스의 제럴드는 헨리 2세가 슬퍼한 이유가 차남인 청년왕 헨리의 죽음을 다시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호버든의 로저는 막내 존만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회를 신나게 즐겼다고 증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